우과장 업무노트 / / 2020. 6. 16. 23:14

[일 쫌 잘 하고 싶다] not (느리고, 답답하고, 딴말하고)

#1 이런 내용을 다룹니다.

일을 잘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고, 이왕 일을 하는 곳이니 잘하는 것이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말의 의미를 아시나요? 저부터도 일 잘한다는 말의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 당연해 보여서였을까요? 회사마다 일 잘한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고, 바로 그 사람들이 하는 방식이 일 잘하는 법이다라고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길도가 있다고 해봐요. 모두들 길도를 가리켜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저는 길도가 그린 그림을 따라 그리는 연습을 매일같이 합니다. 그럼 저도 그림을 잘 그리게 될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길도는 추상화 작가였습니다. 다양한 색을 사용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작가입니다. 구도 잡는 법과 연필 쓰는 법부터 배워야 할 초보가 길도가 그린 추상화를 매일같이 따라 그린다고 하여 실력이 늘기란 어렵습니다.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각자의 역량과 장기가 다르고 좋은 평가를 받는 맥락도 다릅니다. 일 잘하고 싶은 우리는 특정한 모델을 무작정 따르기보다는 일 잘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그 능력을 상황에 맞게 구사할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 될 때마다 일 잘하기 위한 요소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프롤로그

오늘 마팀장과 미팅을 하다가 협력업체 이차장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 전임자의 카운터 파트였고 아직까지 저와는 별다른 커뮤니케이션이 없었던 터라 특별한 인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죠. 이야기 중에 마팀장이 이차장을 가리켜 이런 말을 합니다.

 

"그 사람 참 같이 일하기 힘들어, 느리고, 답답하고, 나중에 딴말해."

 

'느리고, 답답하고, 딴말하고' 이 세마디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3 문제분석

일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사물을 상대하는 일과 사람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도자기를 빚거나 조각상을 만들거나 자연의 이치를 밝히는 일은 상대가 사물입니다. 이런 일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최고의 결과를 내면 일을 잘한게 됩니다. 뜬금없이 미생 이야기에 빗대어보자면, 어느 날 장그래는 김대리가 지시한 컴퓨터 폴더 정리 작업을 하게 됩니다. 자세한 지시사항을 받지 못한 장그래는 마인드맵까지 그려가며 본인의 상식과 지식, 자신의 일의 결과물이 사용될 상황까지 상상해가며 업무를 합니다. 본인이 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장그래는 일을 잘한 것일까요?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업무를 지시한 김대리의 평가는 혹독합니다. 해오던 방식이 있는데 이거를 이렇게 뒤집어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보냐고, 일 혼자 하는 거 아니라고 면박을 줍니다.

 

우리가 흔히 회사에서 하는 일이 바로 이 두 번째 방식, '같이 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 보니 일의 결과물을 평가하는 방식도 달라지게 됩니다. 일단 최고의 일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최고라는 건 평균을 뛰어넘은 높은 수준이라는 이야기인데, 그 말은 과거의 성과물과 사뭇 다르다는 의미를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르다는 건 평범한 의식 수준에 있는 사람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을 척도로 눈 앞의 결과물을 평가합니다. 결국 평균에 수렴할수록 좋은 평가를 받게 되고 최고에 수렴할수록 최악과 다를 바 없는 낮은 평가를 받곤 합니다. 간혹 최고의 결과물이 해당 사안에 의식 수준이 높고 연륜이 있는 평가자를 만나게 되면 그 가치를 인정받곤 합니다. 장그래의 폴더 정리 방식이 가진 가치를 알아본 오과장처럼 말이죠.

#4 해결책

그렇다면 함께 하는 일에서 평균 정도 수준의 결과물을 내면서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무엇을 잘해야 할까요? 그 대답이 마팀장의 세 마디 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느리다 : 일은 빨라야 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답답하다 : 진행경과가 눈에 보여야 합니다. 중간중간 피드백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딴말한다 : 커뮤니케이션에 미스가 있으면 안 됩니다. 이해 안 된 부분이 있으면 다시 물어서라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 여러 번 묻는 것도 서로의 시간을 뺏는 행위입니다. 한 번에 빨리 알아듣는 게 좋습니다. 흔한 말로 말귀가 밝다고 하지요.

 

회사에서는 예술작품 수준의 고퀄리티 결과물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평범하고 예상 가능한 수준의 결과물, 그래서 누구한테 들이밀어도(보고해도) 트집 잡히지 않고 물 흐르듯 업무를 진행시킬 수 있는 그런 결과물을 원합니다. 여러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다 보니 뭔가에 트집 잡히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고 비효율의 원인입니다. 어떤 일이 주어지면 한 번에 정확히 알아듣고 진행경과를 공유하며 빠른 속도로 예상 가능한 결과물을 내는 것. 회사 내에서 일 잘한다고 평가받는 길입니다.

#5 에필로그

마팀장의 세 마디가 계속 마음에 걸리고 계속 되새겨 보게 됩니다. 나는 빠르고, 피드백 잘하고, 말귀가 밝은 사람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저는 스스로 일하는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을 해서 남다른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와중에 일처리가 빠릿빠릿한 사람들에게 은근한 질투심도 느껴왔더랬죠. 내 안에 미묘하게 흐르던 자부심과 불청객처럼 불쑥불쑥 치솟던 열등감의 민낯을 보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에 잠겨 봅니다. 정말 결과물의 질보다는 속도와 양만이 중요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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