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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과장 업무노트

[보고서 어휘 살펴보기] 구체적 vs 세부적

by 정글거북이 2020.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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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요사이 코로나19로 인해 여기저기 지원금 프로젝트가 많이 있습니다. 어디서 연락을 받았는지 마팀장이 아침 댓바람부터 이거 빨리 신청해야 한다며 난리를 피웁니다. 공고문을 확인하고 관련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니 온라인 신청이네요. 특별히 준비할 건 많지 않아 보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성을 시작합니다. 업체명, 담당자 인적사항 등 단순한 사항들을 채우고, 이제 사업비 사용계획을 작성해야 하는데 항목 중에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으라는 말이 있네요. 이런... 괜히 신경이 쓰입니다. 어떻게 하면 구체적이 되는 건가요? 많이 쓰면 될까요?

#2 문제분석

'구체적'이라는 말은 보고서에서 흔히 쓰이는 어휘입니다. 대면보고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도 많이 사용되죠. 특히 상사들이 업무지시를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얄미운 어휘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론 '세부적'이라는 어휘도 있습니다. '세부 사항' 같은 형식으로도 많이 사용되죠. 이번 글에서는 '세부적'이라는 어휘와 비교하여 '구체적'이 의미하는 바를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3 본뜻

구체(體 / 갖출 구, 몸 체)

'몸을 갖추다'라는 의미가 되겠네요. 체(體)는 몸, 신체, 물질, 물체, 형상 등을 뜻합니다. 즉,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 쓰다'라고 한다면,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대상을 바탕으로 쓰라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말은 '추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전 상으로는 '어떤 사물이 직접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는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추고 있지 않은. 또는 그런 것(표준국어대사전)'이란 의미를 갖습니다. '강력한 대책', '최고의 평가'는 추상적인 표현입니다. 반면, '내년 성장률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대책', '평가자 전원이 5점 만점 중 5점의 평가를 내린'이라는 표현은 구체적입니다.

 

세부(部 / 가늘 세, 떼 부)

'가늘고 자세한 부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세부적으로 쓰다'라고 한다면, 가능한 작은 단위까지 쪼개서 빠짐없이 적으라는 뜻입니다. 복잡한 내용을 잘게 쪼갤 필요가 있을 때 사용됩니다. 반대말은 '대체적'이나 '대강'이 될 수 있겠네요. '대체적'의 사전적 의미는 '일이나 내용의 기본인 큰 줄거리로 된. 또는 그런 것.(표준대국어사전)' 입니다. '대강'에서 '강(綱)'은 그물코를 꿰는 굵은 줄을 의미합니다. 그물코가 넓은 그물로도 충분히 건져 올릴 수 있는 큼지막한 개념들을 다룰 때 사용할 수 있는 어휘입니다.

#4 보고서를 위한 적절한 사용

구제적 방안 : 바로 실행이 가능할 정도로 해야 할 일이 명확한 방법이나 계획

세부 방안  : 해야할 일을 빠짐없이 정리한 계획

 

  • 매출 성장을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 (O) / 매출 성장을 위한 세부 방안 마련 (X)

    매출 성장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 정해진 과제가 없고 새로이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서 '세부 방안'이란 표현은 어색합니다. 이 경우에는 '신규 매장 출점', '구매전환율 향상을 위한 VMD 강화'와 같이 수행 가능한 Action을 강조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더 적합합니다.
  • 직원 교육과정 관련 구체적 운영 방안 수립 (△) / 직원 교육과정 관련 세부 운영 방안 수립 (O)

    '직원 교육과정 운영 방안 수립'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는 상황에서 이 업무를 어떤 수준으로 진행하겠다는 표현이 나와야 합니다. 이미 해야 할 일이 정해진 상황에서 '구체적'이라는 어휘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 교육과정을 진행하겠다는 내용 정도가 구체적인 추가 정보가 될 수 있지만, 이 역시 세부 운영 방안에 포함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구체적 운영 방안'이라는 말로써 어떤 범위의 일을 한정 짓고자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직원 교육과정과 같이 과거에도 진행된 바 있고 익숙한 사안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과제인 경우에는 '구체적 운영 방안 수립'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수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초·중·고 대상으로 진행된 온라인 개학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입니다. 따라서 '온라인 개학 관련 구체적 운영 방안 수립'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이 경우 단순히 세부 운영 방안만 마련된다면 실제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불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 방안 마련이 선행되어야 하지요.

#5 에필로그

휴~ 이제 다 적었습니다. 지원금을 받아 진행하고자 하는 사업계획을 두리뭉실하지 않고 모호하지 않게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하였습니다. 지원금을 받게 되면 저희 회사가 운영하는 매장의 위생관리를 강화하는데 사용하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위생관리 수준 고도화' 이런 식으로 타이틀을 잡았겠지만, 이번에는 '매장 내 손소독제 비치를 통한 위생관리 강화'라고 구체화했습니다. 하단에 '주요 품목', '구매 수량', '예상 비용' 등 세부 항목도 꼼꼼히 적었고요. 다 적고 나서 보니 계획이 한결 생동감 있게 다가옵니다. 이제 마팀장에게 보고하는 일만 남았네요. 이번 보고는 잘 넘어갈 수 있을까요? 괜한 꼬투리 잡히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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