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보고 싶은 게 있을 땐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관리자가 되면 이런 경향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 책임이 늘어나는 과정인 것처럼, 사원에서 진급을 거쳐 관리자가 되는 것도 책임이 점점 늘어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책임이 늘어난다는 말 뒤에 살짝 숨어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여기에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의사결정을 해서 나오는 성과가 -100점부터 +100점이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좋은 의사결정을 하면 +100점을 받고 나쁜 의사결정을 하면 -100점을 받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왠만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시간제한이죠. 정해진 시간 안에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면 0점을 받게 됩니다. 신입사원일 때는 주어진 과제가 많지 않습니다. 책임의 범위가 좁죠. 그러다 보니 시간제한이 상대적으로 느슨합니다. 한 가지 과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연차가 쌓이고 진급을 하게 되면서 과제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심지어 관리자급이 되면 도저히 혼자서는 쳐내지 못할 만큼의 과제를 떠안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물론 모든 일은 혼자서 하진 않죠. 직급이 올라간 만큼 자신이 과제를 지원해줄 맨파워 역시 생깁니다. 그러나 결국 책임은 관리자가 지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과제를 처리하던 보고를 받아서 처리하던 해당 과제에 대해 파악하고 검토하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과제에 많은 시간을 쏟진 못합니다. 그래서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하고 하나의 가설을 세워 그 안에 현상을 끼워 맞추려 합니다.
무비 패스는 한동안 미국에서 굉장히 핫한 구독 경제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월 만원 조금 넘는 돈을 내면 영화관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는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고 가입자가 빠른 시간 안에 300만 명까지 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무비 패스를 가리켜 '오프라인의 넷플릭스'라 불렀지요. 그러던 회사가 작년 9월에 서비스 중단을 선언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무비 패스는 애당초 구독료로 돈을 벌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무비 패스는 사람들이 극장을 이용하는 데이터를 영화사에 팔아 돈을 벌 생각이었습니다. 주 수입원을 데이터 판매로 생각했으니 구독료를 낮추고 많은 고객을 모으려는 확장 전략을 사용했지요. 그러나 무비 패스가 사업전략을 수립하면서 세운 가정 중에 중요한 부분이 어긋나 버립니다. 당초 사람들이 구독을 해도 헬스장처럼 한 달에 몇 번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허술한 인증 프로세스(발급된 전용카드만 확인했다고 합니다)를 피해 하나의 구독으로 여러 사람이 돌려쓰는 현상이 발생하고, 한편으론 영화를 누가 많이 봤나 경쟁하는 추세까지 생겨납니다. 횟수가 늘어나니 비용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고 바이어스가 낀 데이터는 쓸모가 없어집니다. 결국 서비스는 운영을 중단합니다.
무비 패스의 이야기는 성과를 내야 하는 경영진이 조급한 마음에 허술한 전략으로 시장에 진입했다가 낭패를 당한 케이스입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심사숙고를 해야 하나요? 아, 참. 우리한텐 시간제한이 있었죠? 그럼 어떻게 하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쌓으면 되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능력은 필요하다고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습니다. 능력을 쌓는데도 시간이 들어갑니다. 현명한 대응이 한 가지 있습니다. 작게 시작하고 작게 실패해보는 방법입니다. 가장 효율적인 배움은 빠르게 실행해보고 피드백을 받는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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